1966년, 독일 광학 기업 롤라이플렉스(Rollei)는 사진 세계에 작은 혁명을 일으킬 제품을 발표했다. 바로 '롤라이 35'였다. 출시 당시 세계에서 가장 작은 풀프레임 35mm 카메라라는 타이틀을 획득한 이 혁신적인 카메라는 오늘날까지도 그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롤라이 35의 개발은 독일의 천재적인 광학 엔지니어 하인츠 위처(Heinz Waaske)의 손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원래 아그파(Agfa)에서 근무하며 초소형 카메라를 개발하고자 했으나, 회사의 지원을 받지 못하자 개인 시간을 활용해 프로토타입을 완성했다. 1965년 롤라이로 이직한 위처는 이 프로토타입을 회사에 제안했고, 헨리 프레스(Henri Pross) 회장의 즉각적인 승인을 받았다. 단 1년 만에 완성된 롤라이 35는 1966년 포토키나(Photokina)에서 공개되어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놀라운 소형화를 실현하기 위해 위처는 여러 혁신적인 기술을 적용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접이식 렌즈 메커니즘이었다. 40mm f/3.5 칼 자이스 테싸(Carl Zeiss Tessar) 또는 옌너 소나(Sonnar) 렌즈는 사용하지 않을 때 바디 안으로 접혀 들어가, 놀라울 정도로 얇은 프로필을 실현했다. 크기는 97×60×32mm, 무게는 약 370g에 불과했다. 롤라이 35는 여러 버전으로 발전했다. 초기 모델은 독일에서 생산된 '롤라이 35'와 '롤라이 35T'였으며, 후에는 '롤라이 35S', '롤라이 35TE/SE'(전자식 버전), 그리고 저가형 '롤라이 35B/35LED' 등이 출시되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싱가포르에서도 생산되었으며, 1981년에는 독일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모든 생산이 싱가포르로 이전되었다. 롤라이 35는 1996년까지 약 30년간 생산되어, 총 200만 대 이상이 판매되었다.
기술적 특징을 살펴보면, 롤라이 35는 순수 수동식 카메라로, 렌즈 주변에 셀레늄 셀 노출계를 갖추고 있었다. 이 노출계는 배터리 없이 작동하여 카메라의 상단에 있는 노출계 바늘로 정보를 표시했다. 셔터 속도는 1/500초부터 1/30초(후기 모델은 1/2초까지)를 지원했다. 조리개는 f/3.5부터 f/22까지 설정 가능했다. 특이한 점은 셔터 속도 다이얼과 조리개 다이얼이 카메라 하단에 위치했다는 것이다. 이는 소형화를 위한 디자인 결정이었지만, 사용자들에게는 약간의 학습 곡선이 필요했다. 렌즈는 모델에 따라 40mm f/3.5 테싸, 40mm f/2.8 소나, 또는 저가형 모델의 경우 트로타(Triotar) 렌즈가 장착되었다. 이 렌즈들은 모두 뛰어난 광학 성능을 제공했으며, 특히 테싸와 소나 렌즈는 오늘날까지도 그 선명함과 콘트라스트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측거계가 없어 거리계(zone focus) 방식으로 초점을 맞춰야 했으며, 렌즈 배럴에 거리 표시가 있어 대략적인 거리를 설정할 수 있었다. 뷰파인더는 밝고 선명했지만, 렌즈와 통합되지 않아 근접 촬영 시 시차 문제가 있었다.
롤라이 35의 사용법은 독특하다. 먼저 바디 하단의 버튼을 눌러 렌즈를 펼친 후, 노출계의 지시에 따라 하단의 셔터 속도와 조리개 다이얼을 설정한다. 그 다음 거리계를 이용해 대략적인 촬영 거리를 렌즈에 설정한 후,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누른다. 필름 감기는 하단의 작은 레버로 한다. 필름 장전은 다소 까다로운데, 바디 전체를 열어 필름을 넣은 후 테이크업 스풀에 필름을 올바르게 감아야 한다. 롤라이 35의 장점으로는 놀라운 휴대성, 뛰어난 광학 성능, 견고한 금속 구조, 배터리 없이 작동하는 노출계, 그리고 우아한 디자인을 꼽을 수 있다. 반면 단점으로는 측거계 부재로 인한 초점 맞추기 어려움, 하단에 위치한 컨트롤로 인한 불편함, 필름 장전의 복잡성, 그리고 특히 근접 촬영 시 발생하는 뷰파인더 시차 문제 등이 있다.
많은 유명 사진가들이 롤라이 35를 사용했다. 데이비드 베일리(David Bailey)는 패션 촬영 현장에서 주력 카메라 외에 롤라이 35를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고 알려져 있으며, 비공식적인 순간들을 포착하는 데 활용했다. 앤디 워홀(Andy Warhol)도 롤라이 35의 열렬한 팬이었으며, 일상의 스냅샷을 찍는 데 즐겨 사용했다. 미국의 거리 사진가 개리 위노그랜드(Garry Winogrand)는 메인 카메라인 라이카 M 시리즈와 함께 백업으로 롤라이 35를 활용했다고 한다. 특히 여행 사진가들 사이에서 롤라이 35는 크기와 무게 대비 뛰어난 이미지 품질로 인해 큰 사랑을 받았다. 워커 에반스(Walker Evans)도 말년에 가볍고 불눈에 띄지 않는 카메라를 찾아 롤라이 35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디지털 시대에도 롤라이 35는 여전히 많은 사진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카메라다. 최근 필름 사진에 대한 관심 부활과 함께, 새로운 세대의 사진가들이 이 작고 아름다운 카메라를 재발견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 카메라가 지배하는 시대에, 롤라이 35는 의도적이고 사색적인 사진 촬영 과정을 경험하게 해주는 도구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롤라이 35의, 특히 독일제 모델의 컬렉터 가치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상태가 좋은 롤라이 35S는 약 400-700달러 선에서 거래되며, 희귀한 금도금 모델이나 한정판은 1,000달러 이상의 가격에 판매되기도 한다. 싱가포르제 모델은 일반적으로 독일제보다 약간 낮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으나, 상태가 완벽한 제품은 여전히 높은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컬렉터들 사이에서는 특히 초기 독일제 모델, 크롬 마감의 35S, 그리고 한정판 모델(플래티넘, 골드, 롤라이 35 클래식 등)이 인기가 높다.
롤라이 35가 현대 카메라 디자인에 미친 영향도 주목할 만하다. 소형화와 휴대성을 강조하면서도 이미지 품질을 타협하지 않는다는 롤라이 35의 철학은 현대 고급 콤팩트 카메라와 미러리스 카메라 디자인에 계승되고 있다. 최근 리코 GR 시리즈, 후지필름 X100 시리즈 등은 롤라이 35가 추구했던 '주머니에 들어가는 고품질 카메라'의 현대적 해석으로 볼 수 있다. 특히 2022년 리코에서 출시한 GR IIIx '어반 에디션'은 롤라이 35에 대한 오마주로, 실버 바디와 파란색 링 등 롤라이 35의 디자인 요소를 명확히 참조했다. 롤라이 35는 단순한 빈티지 카메라를 넘어, 훌륭한 디자인과 공학의 타임리스한 가치를 증명하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그것은 첨단 기술만이 능사가 아니며, 사용자 경험과 휴대성, 내구성의 조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시키는 존재다. 오늘날 스마트폰과 첨단 디지털 카메라가 넘쳐나는 시대에도, 롤라이 35는 사진의 본질적 즐거움과 아날로그적 경험의 가치를 일깨우는 특별한 도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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